중동 산유국들의 적극적인 증산 기조와 해상 수출선 복원에 힘입어 글로벌 원유 공급량이 전쟁 이전 수준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물동량이 회복세로 돌아서고 주요국들이 우회 수송망을 전격 가동하면서, 그동안 국제 유가를 볼모로 삼아온 이란의 해협 봉쇄 압박 카드가 급격히 위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최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일일 원유 운송량이 눈에 띄게 증가함에 따라 올해 글로벌 원유 생산량 전망치가 대폭 상향 조정됐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경우 연말에는 전 세계 원유 공급망이 지정학적 무력 충돌 이전의 안정적인 수준을 거의 완벽하게 회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반전의 배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전략적 수송로 다변화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주요 외신 분석에 따르면, 사우디는 홍해 연안의 얀부 항구를, UAE는 오만만의 푸자이라 항구를 거점으로 삼아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파이프라인 수송을 대폭 확대했다. 비록 홍해 인근에서 후티 반군의 드론 및 미사일 위협이 상존하고 있으나, 9월 기준 중동 전체 원유 수출량은 하루 1,630만 배럴로 회복되며 전쟁 전 평시 물량의 80% 선을 단숨에 돌파했다.
원유 수송로의 정상화는 이란의 지정학적 입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의 촘촘한 해상 감시망과 경제 제재로 인해 정작 이란 자체의 원유 수출은 철저히 차단된 반면, 주변국들의 공급 대체 능력이 입증되면서 이란이 쥐고 있던 '에너지 병목 길목 통제권'의 협상력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심각한 재정난과 경제적 고립 속에서 이란이 다자 외교 협상 테이블에서 극도로 불리한 처지에 몰렸다는 진단이 잇따른다.
그러나 국제 에너지 시장의 잠재적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궁지에 몰린 이란이 협상 주도권을 만회하기 위해 대리 세력을 통한 상선 공격이나 핵심 정유 시설 타격 등 비대칭적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군사적 긴장감이 여전히 팽팽하다. 또한 해상 운임과 전쟁 보험료가 여전히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어, 완전한 안정화까지는 국지적 유가 변동성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중동 에너지 시장은 산유국들의 인프라 다변화와 공급 회복으로 이란의 물리적 위협을 무력화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항로의 군사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뇌관으로 남아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국내 정유 및 화학 산업계 역시 중동 정세의 다변화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비축유 운용과 도입선 다변화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