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메마른 일상에 따뜻한 '시(詩)그널'을 켭니다. 행간에 담긴 마음의 떨림 속에서 바쁜 일상에 잊히기 쉬운 '인권과 존엄'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인권온에어가 전하는 詩 한 편이 당신의 오늘에 다정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왜 가로등이에요?”
아이들은 가끔 어른이 그냥 지나치는 것을 붙잡는다. 너무 익숙해서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말이나 물건 앞에서 “왜요?” 하고 묻는다. 박명숙 시인의 아이도 그랬다. 세로로 똑바로 서 있는 가로등을 보더니 이름부터 이상하다고 했다.
가로등
아이가 물었다
“저 등은 세로로 서 있는데
왜 가로등이에요?”
“그러게.
내일 시청에 전화해 봐야겠다.”
골목을 나서자
가로로 늘어선 등이
불빛으로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가 말했다.
“전화 안 해도 되겠어요.”
_박명숙
어른이라면 대충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이름이 가로등이야.” 그런데 시 속 어른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게” 하고 같이 궁금해한다. 심지어 시청에 전화해 보겠다고까지 한다. 아이의 질문을 우스운 말로 넘기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둘은 계속 걸어간다. 골목을 나서자 가로등들이 나란히 서 있다. 하나씩 따로 서 있던 불빛이 멀리서 보니 가로로 이어져 있다. 그 모습을 본 아이가 먼저 답을 찾는다. “전화 안 해도 되겠어요.”
이 장면이 참 좋다. 어른이 답을 알려 준 게 아니다. 아이가 직접 보고 알아냈다. 누군가 “정답은 이거야”라고 먼저 말했으면 그냥 외우고 끝났을지 모른다. 그런데 조금 더 걸어갔더니 자기 눈으로 답을 만났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다. 어른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이에게는 처음 보는 세상이다. 그래서 엉뚱해 보이는 질문이 나오고, 때로는 그 질문 때문에 어른도 다시 보게 된다. 가로등 하나를 두고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어른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다. 처음부터 답을 정해 놓고 상대 말을 듣다 보면 놓치는 것이 생긴다.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잠깐 같이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꼭 누가 먼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박명숙 시인의 가로등은 그대로 세로로 서 있다. 달라진 것은 아이의 눈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 같이 걸었던 어른의 눈도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날 골목에서 답을 찾은 건 아이였으니까.
시인 소개

박명숙 시인은 아하시 백일장에서 수상했으며 한국감성시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감성시협회 아하시 4기·6기 과정을 수료했으며,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장면을 따뜻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시에 담고 있다. 한국감성시협회 아하시 동인시집 4집 ‘모든 것이 아하!’를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