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의 마음을 모르는 연봉 협상은 퇴사의 지름길이다.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직원에게 흔히 듣는 말이다.
연봉 협상을 마친 직원이 웃으며 인사했다. 일반 회사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폭으로 올려준 자리였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직원은 사직서를 냈다.
중소형 병의원의 인력 시장은 지금 대란이다.
업계에서는 “손발만 있으면 뽑는다.”는 말이 돈다.
보건의료노조가 2026년 조합원을 조사했을 때도 10명 중 7명(68.1%) 이 부서에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공고를 내면 이력서는 온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이력서가 실제 면접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30% 정도다. 지원해 놓고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채용 플랫폼도 돈을 많이 낼수록 공고를 위에 올려주는 구조라, 사람 하나 구하는 비용도 커졌다.
인크루트가 2025년 인사담당자 446명에게 물었더니, 일반 기업도 다섯 곳 중 한 곳(21.5%)은
신입 한 명을 실무에 투입하기까지 300만 원 넘게 들었다고 답했다.
이력서를 열어 보면 2~3개월, 길어야 6개월 단위로 직장을 옮긴 기록이 흔하다.
예전 같으면 면접 연락조차하지 않았을 이력이다. 지금은 그런 지원자에게도 전화를 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병원이 연봉으로 사람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연봉은 협상 테이블에서 처음 꺼내면 이미 늦다.
직원이 1년 뒤 얼마를 기대하는지는 수습 3개월 때 먼저 물어야 한다.

올려줘도 떠나는 이유
병의원 인건비는 이미 크게 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병원 직원이 4년제 대학을 나온 회사원보다 높은 연봉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연봉 인상 폭도 일반 회사보다 크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떠난다.
협상 자리에서는 고맙다고 하고, 1년을 채워 연차가 생기면 그 사이 알아둔 다음 직장으로 옮긴다.
벼룩시장이 직장인 1,722명을 조사했더니, 퇴사 경험자의 47.9%는 회사에 진짜 이유를 숨기고 적당히 둘러댔다고 답했다.
이유는 비교 대상에 있다.
사람을 구하지 못한 병원 한두 곳이 시세를 훌쩍 넘는 연봉을 내건다. 백 곳 중 한 곳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 공고를 본 순간 직원의 눈높이는 그곳에 맞춰진다. 연봉 협상 시기가 되면 그런 공고부터 찾아본다.
지금 받는 연봉이 적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경험이 적은 직원일수록 이 비교는 단순해진다.
오래 일해 본 사람은 조직 문화와 복지, 높은 연봉에 따라오는 업무 강도까지 따진다.
경험이 적으면 금액만 보인다. 일단 더 주는 곳으로 옮기고, 후회하고, 다시 옮긴다.
같은 조사에서 퇴사를 후회한 이유 1위도 '옮긴 뒤 연봉이나 근무환경이 더 나빠져서'(37%) 였다.
일반 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같은 인크루트 조사에서 신입사원이 일찍 퇴사하는 이유로
낮은 연봉(42.5%)이 직무 불일치 다음으로 많이 꼽혔다.
내가 일하는 병원은 태움이나 따돌림을 용납하지 않고, 복지 프로그램도 많다.
그런데도 퇴사는 막히지 않았다. 좋은 문화와 복지만으로는 연봉 비교를 이길 수 없다.

협상 테이블에서 알면 늦다
처음 시도한 방법은 연봉 협상 전 인사평가지에 희망 연봉을 직접 적게 하는 것이었다.
효과는 있었다. 직원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숫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예를 들어, 병원은 10% 인상을 준비했는데 직원이 30%를 적어 내면, 그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더 올려주거나, 설득하거나, 떠나보내는 수밖에 없다.
알게 된 시점이 너무 늦은 것이다.
수습 3개월에 1년 뒤를 물어라
그래서 질문을 앞당겨야 한다.
수습 3개월이 끝나고 정직원 전환을 앞둔 평가에 문항 하나를 넣는다.
"1년 뒤 연봉을 얼마나 올려 받고 싶은가.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이 질문 하나로 많은 것이 드러난다.
아직 보여준 것이 없는데 터무니없는 금액만 적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 금액의 근거가 무엇인지, 어떤 능력을 키워서 받고 싶은지 묻는다.
그래도 근거 없이 금액만 고집한다면, 병원은 1년 뒤를 미리 준비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떠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체 인력을 천천히 찾는 것이다.
반대로 적정한 금액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적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계획대로 해낸다면 수습 때 예상한 것보다 더 줘도 아깝지 않다.
수습 평가는 떠날 사람을 가려내는 자리이면서, 붙잡을 사람을 찾는 자리다.
납득은 예고에서 나온다
차이는 1년 뒤 연봉 협상에서 난다.
수습 때 이미 한 번 이야기를 나눈 직원은 그 자리를 기억한다.
병원의 현실도 들었고, 자신이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도 안다. 그래서 결과를 납득한다.
기대보다 적은 금액을 받아도, 자신의 평가가 그만큼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납득하지 못하는 직원도 있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경우다.
이런 직원은 기대보다 적게 받으면 나아지기보다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니 수습 평가는 실력만이 아니라 자기 객관화를 확인하는 자리여야 한다.
맞지 않는다고 느낀 직원은 스스로 정리하고, 병원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원장님이 안 된다고 하신다”며 협상을 끌다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사라진다.
사람이 모자라다고 웃돈을 얹어 붙잡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 순간 묵묵히 잘해 온 직원에게 불공평한 병원이 된다.
잘하는 사람은 확실히 잡고, 맞지 않는 사람은 놓아줘야 한다.
그 구분이 서야 연봉이 사람을 붙잡는 힘을 갖는다.
AI에게는 숫자를, 사람에게는 대화를
이 구조를 오래 유지하려면 평가가 가벼워야 한다.
평가지를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나니 항목별 점수와 팀 안의 실제 순위가 저절로 나왔다.
누가 잘하고 누가 부족한지 감으로 판단하던 시간이 크게 줄었고, 그만큼 수습 면담에 시간을 쓸 수 있었다.
AI는 숫자를 정리할 뿐이다. 그 숫자를 들고 직원과 마주 앉아 1년 뒤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원장이 먼저 기준을 정해야 한다
수습 평가에 연봉 질문을 넣으려면 원장이 먼저 기준을 정해야 한다.
어떤 성과에 얼마를 줄 수 있는지 병원의 선이 없으면, 관리자는 수습 면담에서 현실을 말해줄 수 없다.
기준을 정하고, 면담을 관리자에게 맡기고, 그 결과를 뒤집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직원은 면담에서 들은 말을 믿는다.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라는 말은 합의가 아니다. 진짜 기대를 아직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기대를 1년 뒤 협상 테이블에서 처음 듣는 병원은 늘 한발 늦는다.
그러니 연봉은 3개월부터 물어야 한다.
미리 물은 병원만이 1년 뒤에 납득을 얻는다.
<AI에게 건넨 첫마디>
"(우리 병원의 핵심 가치들과 평가 기준을 넣고) 수습 본인 평가지와 팀장 평가지를 만들고,
직원이 1년 뒤 기대하는 연봉과 그걸 위해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적게 하고, 그 답이 현실적인지 판단할 기준도 함께 정리해 줘."

현재 대한병원실무전문가협회 부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더라인성형외과 총괄이사로 재직 중이다.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병의원을 중심으로 20여 년간 마케팅 총괄과 병원 총괄을 맡으며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았고,
경희대학교 의료경영 MBA 과정을 통해 의료경영 전문가로 거듭나고 있다.
AI를 활용해 병의원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AX 조직 전문가로서,
사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병원을 만드는 방법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참고자료
인크루트, 「신입사원 조기 퇴사」 설문조사(인사담당자 446명), 2025.5.13. 출처: SBS Biz, 「'뽑으면 나가고 뽑으면 나가고' 절반이상 '조기퇴사'」, 2025.5.13.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2026년 현장 실태조사」(조합원 4만 5천여 명,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의뢰), 2026.5.26. 출처: 오마이뉴스, 「"보건의료노동자 3명 가운데 2명 꼴 이직 고려"」, 2026.5.28.
벼룩시장, 직장인 1,722명 대상 '퇴사 경험' 조사. 출처: 한국경제, 「"1년도 안 됐는데 퇴사한 이유가"…직장인들 '충격 고백'」, 2025.2.10.


